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인간 심리의 깊은 층위를 파고드는 명저로 평가받습니다. 이 두 책은 자유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인간이 그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왜 때로는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지를 철학적이면서도 심리학적으로 고찰합니다. 특히 프롬은 자유가 인간에게 단순한 해방이 아닌, 내면의 불안과 책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으며, 펙은 인간의 성장과 성숙이 결국 그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자유의 본질, 자유 회피의 심리 메커니즘,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성숙한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자유의 본질과 인간의 두려움
우리는 흔히 자유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압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상태, 즉 외부 구속이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정의하죠.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이 단순한 개념을 넘어, 자유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소극적 자유**, 즉 억압이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 즉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자유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 자유를 얻은 후,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때 인간은 막연한 공포와 혼란에 휩싸입니다. "이제 나는 자유롭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여도 무겁습니다. 이 질문은 곧,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시 구속을 찾기 시작합니다. 강한 리더, 종교, 이념, 대중의 흐름 등 자신 대신 결정해주는 존재에 의탁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오늘날에도 널리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 만큼, 불안과 정체성 혼란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SNS에서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사회적 기준에 끊임없이 자신을 맞추려는 행동은, 자유를 향한 열망보다는 자유가 주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기쁨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때때로 고독과 두려움을 동반하며,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없다면 오히려 인간을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2. 자유 회피의 심리 메커니즘
자유를 회피하는 심리적 작용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인간 본성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프롬은 이러한 회피 메커니즘을 세 가지 주요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권위주의, 파괴성, 그리고 기계적 동조입니다. 이 세 가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유로 인한 불안을 피하려는 시도이며, 모두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권위주의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복종함으로써 선택의 부담을 피하려는 심리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대신,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길 원합니다. 종교 지도자, 정치인, 상사, 혹은 이념적 구루 같은 존재에 심리적으로 의지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외면합니다. 이는 ‘나는 단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태도를 정당화하며, 결국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파괴성</strong입니다. 이 경우 인간은 자유가 주는 고독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외부 세계를 공격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합니다. 혐오 범죄, 사이버 폭력, 정치적 극단주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자유의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여, 타인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방식입니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기계적 동조</strong입니다. 이는 가장 흔하면서도 위험한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규범이나 유행, 문화적 기대에 철저히 자신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이게 정상이지 않나?"와 같은 생각은 개인의 자율성을 마비시키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대신 ‘타인의 삶’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자아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며, 깊은 내면의 공허감을 남깁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단기적으로는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깊은 내면의 공허와 우울, 그리고 정체성 혼란을 야기합니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핵심이지만,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은 다시 구속을 자처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 회피는 단순한 심리적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3.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성숙한 자유로 나아가기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는 인간의 성장은 고통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즉,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대가도 감수해야 하며, 이것은 곧 성숙한 인간으로의 여정이라고 봅니다. 펙은 인간의 심리적 성장 과정을 심리치료 사례를 통해 설명하면서, 자유를 회피하는 대신 그것을 직면하고 감내하는 용기를 강조합니다. 성숙한 자유란 단순히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펙은 이 과정에서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합니다: 지연된 만족, 자기 책임감, 진실된 소통, 균형 감각입니다. 예를 들어, 지연된 만족은 당장의 쾌락을 참는 능력입니다. 이는 학업, 커리어, 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기 책임감은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이 감당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진실된 소통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해지는 것으로, 감정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균형 감각은 삶의 여러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유를 단순한 상태가 아닌 **능력**으로 만들며, 성숙한 자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결국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자유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여정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과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길입니다.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성숙시켜야 하는 능력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이지만, 동시에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태이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과 M. 스캇 펙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통찰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이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혹시 그 자유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 위에 있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만이 성숙한 자유로 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